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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대조 볼 붉은 골에

  ━   대조 볼 붉은 골에     황희 (1363∼1452)   대조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뜻드리며   벼 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나리는고   술 익자 체 장사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 청구영언     ━   오늘에 생각해보는 청백리     대추의 볼이 빨갛게 익은 골짜기에 밤은 어찌 떨어지며, 벼 베어낸 그루터기에 게는 어찌 내려오는고. 술이 익자 때마침 체 장사가 지나가니 걸러서 아니 먹고 어찌하겠는가.   늦가을 추수가 끝난 농촌의 한가로운 풍경을 그리고 있다. 대추와 밤이 익고, 게도 기어 내려오니 술안주가 기가 막히게 마련됐는데, 술은 익고 체 장사마저 지나간다.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절로 군침이 돈다.   방촌(?村) 황희(黃喜)는 공민왕 12년에 개성에서 태어나 성균관 학록으로 있을 때 고려가 망하자 72인의 선비들과 두문동에 들어갔으니 두문불출(杜門不出)의 주인공이다. 새 왕조의 요청과 두문동 선비들의 권유로 태조 3년에 입조해 문종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기틀을 다졌다. 특히 세종 재위 32년 중 18년을 영의정으로 지냈다.   그는 청렴하여 비가 새는 방에 멍석을 깔고 지냈으며, 보리밥에 된장, 나물로 식사했다고 한다. 관복도 단벌이었다. 1인지하 만인지상이었던 그는 많은 녹봉과 노비를 받았으나 자신의 몸가짐을 청렴하게 지켰다. 아들이 큰 집을 마련하자 발길을 끊어 작은 집으로 옮겼다는 일화가 전한다. 조선 왕조가 5백 년을 이어온 것은 이런 청백리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산 임진강변의 반구정은 그가 은퇴 후 지낸 곳이다.   유자효·시인시조가 있는 아침 대조 두문동 선비들 조선 왕조 청백리 정신

2023-05-04

10년을 경영하여 -김장생(1548~1631)

 초가 한 간(間) 지어내니 반 간은 청풍(淸風)이요   반 간은 명월(明月)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 병와가곡집   비워야 보인다   조선 선비의 멋과 기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10년을 경영하여 초가 한 간을 지어냈으니 그 청렴함은 배운 이의 자랑이었다. 초가의 반 간은 맑은 바람으로 채웠고, 나머지 반 간은 밝은 달로 채웠다. 그리고 강산은 집안에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겠다 하니, 강산이 선비의 병풍이 됐다. 지도자들의 이런 청렴 정신과 풍류가 조선 왕조 500년을 이어온 힘이었다.   이 시조를 지은 사계(沙溪) 김장생은 늦은 나이에 벼슬을 시작하고 과거를 거치지 않아 요직이 많지 않았지만 인조반정 이후로는 서인의 영수 격으로 영향력이 매우 컸다.   이 시조는 ‘면앙정잡가’에도 실려 있어 송순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오랜 세월 널리 불린 선비들의 롤모델이기도 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청빈이 자랑이었으며 청백리는 벼슬아치들의 이상이었다. 돈을 둘러싼 추문들이 넘쳐나는 시대. 지도자의 품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시조다.   인간사의 혼탁함과 무관하게 천하는 눈부신 가을이다. 이 가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선을 자연으로 돌려보는 여유로움을 가져보심이 어떠한가. 비워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니까….   유자효 / 시인김장생 경영 조선 선비 조선 왕조 청렴 정신과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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